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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이야기

고등학교 때 끼적거렸던 낙서에서부터 교련복까지 평범했던 청년 이한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물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한열이를 살려내라' 가슴판화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20-06-01 11:16:24 조회 : 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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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6월입니다. 87년 6월 15일 연세대학교 학생회관에 처음 걸렸던 최병수 작가의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87년 6월 민주항쟁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지요. 그후 해마다 6월이면 재학생들이, 졸업생들이, 교직원들이 이한열과 6월민주항쟁의 정신을 기리며 걸개그림을 걸어왔습니다. 그 걸개그림 이전에는 한열이를 살려내라 가슴판화가 있었습니다. 

 

 

이 가슴판화가 만들어진 것은 당시 로이터 통신 정태원 기자의 사진이 신문에 게재된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1987년 6월 11일 아침, 신문을 펼쳐본 최병수 미술작가는 연세대 학생이 최루탄을 맞고 쓰려졌다는 기사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평소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인연이 있었던 그는 연세대학생의 피격이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기사의 말미에는 학생들이 '한열이를 살려내라!' 라는 문구를 적어 가슴에 달고 다닌다는 글이 있었습니다. 기사를 본 그는 '기사 사진을 판화로 제작하여 천에 찍어내고 학생들의 가슴에 달게 하면 어떨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연세대로 달려갔고 당시 '연대 100년사' 작업을 할때 알게 된 만화사랑 회장을 만나게 됩니다. 그를 통헤 쓰러진 학생이 만화사랑의 일원인 이한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더욱 마음 아파했다고 합니다.  판화 작업은 쓰러진 이한열의 모습을 그려 내야 하는 만큼 이한열의 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부상에 슬퍼하고 계신 부모님께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고 하네요. 나중에 최병수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한열의 부모님께 마음의 빚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판화는 6월 12일 연세대 학생 3000여 명이 '살인적 최루탄 난사에 대한 범연세인 규탄대회'를 열었을 때 총학생회 임원과 민가협 어머니들이 이 그림을 옷에 붙이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이후 나무로 만든 원판이 망가져 목판 대신 실크스크린으로 1만장을 더 찍어냈다고 합니다. 복학생들은 예비군복 위에, 의치대생들은 하얀 가운 위에 판화를 달고 시위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이 판화를 바탕으로 가로 7.5, 세로 10미터의 걸개그림을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6월 15일 학생회관에 붙이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오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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