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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이야기

고등학교 때 끼적거렸던 낙서에서부터 교련복까지 평범했던 청년 이한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유물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N·A 학형들에게 – 이한열의 편지
글쓴이 : 관리자 등록일 : 2020-05-11 14:58:19 조회 : 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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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학교 재학시절 이한열이 학우들에게 쓴 편지를 소개합니다.

 

때는 1987년 2월, 2학년을 앞둔 겨울방학이었습니다. 서울의 누님 댁에서 개강준비를 하던 이한열은 부모님의 호출로 갑작스레 광주로 내려가게 됩니다. 학생운동을 한 것이 누님에게 들켰기 때문이지요.

 

 

N·A 학형들에게

1987. 2. 13.일 광주에서 부끄러운 소식을 보냅니다. (중략) 지난 월요일,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학교에 나간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상한 느낌을 받은 누님이 제 책상을 샅샅이 조사 했나 싶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에 학교에서 반겨줄 사람이 과연 누구이겠느냐는 생각이 든 것 같더군요. 결정적인 단서는 지난 H정리 노우트를 발견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중략) 누님이 결국 월요일밤에 광주에 연락을 하여, 어머님이 화요일 저녁에 올라오시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증거로 써클 가입사실을 시인했고, 수요일 아침 당장 광주에 내려가자는 어머님의 말씀과 더불어, 2월 중으로 정리를 하지 못한다면 휴학 처리하고 군에 입대하라는 최후통첩이 날아들었습니다. (중략) 잘 수습해서 빠른 시일 내로 올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민화, 팀 아이티 문제로 고심할 여러분을 생각하니, 한 줌의 도움도 되지 못한 제 자신이 민망스럽습니다. 신문연구회에 대한 문건은 동봉하고, 다음에 만화연구회에 대해 결과물은 얻는 대로 보내겠습니다. 만화 열심히 하시고, 팀 아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여, 87년도의 활동에 대비해 주시길 멀리서 기원합니다. 1학년을 채 넘기지도 못하여, 보안에 소홀하고, 제 자신의 불성실한 생활 태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려 매우 부끄럽습니다. 서로가 발전적인 모습으로 해후하길 기다리며, 첫 번째 소식은 여기서 마칠까 합니다.   - 1987. 2. 13. 빛고을에서 혁이 드림 -

 

N·A는 무슨 뜻일까요? 아마도 민화사랑 이전 이름인 민족주의 연구회 (Nationalism Study) 를 뜻하는 것 같습니다. ‘혁이’는 이한열이 만화사랑 동아리에서 썼던 가명입니다. 중간 부분의 ‘민화’는 세미나의 은어입니다. 학생운동가들은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만들고 세미나를 열어 <전태일 평전>, <해방전후사의 인식>부터 시작해 러시아 혁명사 같은 진보적인 사상을 공부했습니다. ‘팀 아이티’는 아이덴티티, 즉 만화사랑의 정체성을 뜻합니다. 이한열은 입학 초부터 전공 공부보다는 사회에 대한 고민에 열중했습니다. 학교 성적이 좋았을 리 없었겠죠. 하지만 편지를 보면 부모님의 불호령에도 불구하고 하던 일을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학우들에게 미안하다고 하네요. 그 후 그는 더 적극적인 활동에 나섭니다. 5월 초부터 경영관 6층에 있는 경영학과 학회실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가 일을 했고 5월 18일에는 ‘경영학과 2학년 총회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3인 준비위원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총회소집을 위해 「모이자 경영 86」등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학과 결속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 던 이한열.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착한 아들은 그렇게 학생운동가가 되어갔습니다. 

 

이 편지는 이한열의 만화사랑 동아리 선배였던 김선영님께서 2019년 기증해주신 것입니다. 우리 기념관의 기획전시《쓰고 알리다》전에 전시되어있고 e뮤지엄에서도 만나볼 수 있어요.

 

- e뮤지엄에서 이한열의 편지보기

https://bit.ly/2YVB0Q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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